독일의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가 1851년에 펴낸 책 《Parerga and Paralipomena》에 나오는 우화를 보면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s dilemma)’이야기가 나온다. 추위에 견디기 위해서는 두 마리 고슴도치가 서로 몸을 기대어 온기를 나눠야 하는데 너무 가까워지면 상대방의 바늘 같은 가시에 찔려 아프고, 그렇다고 서로 떨어져 있으면 온기를 나눌 수 없어 춥기 때문에 적정 거리를 놓고서 고민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적정거리를 찾게 되는데 이를 고슴도치 딜레마라고 한다. 남극의 펭귄들이 추운 날씨에는 집단적으로 모두 몸을 찰싹 붙여서 추위를 이겨내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대조적이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자주 만나지도 않고 깊은 관계를 맺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너무 가깝다가 서로 상처를 줄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인간관계를 맺지 않으면 자신이 외롭기 때문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는 한다. 이런 사람은 늘 상대와 일정 거리를 두기 때문에 상대방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법이 없고, 상대방으로부터 상처를 받을 일도 없다. 쿨(cool)한 사람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라고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사실 본인에게는 매우 합리적이고 편한 전략이다. 정으로 뭉친 가족 같은 사회에서보다 일 중심으로 뭉친 회사 조직에서는 더 좋은 사고방식이다. 고슴도치들의 이런 적정 거리 간격을 사람 간에는 예절이라 부르기도 한다.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딜레마 이야기는 상당한 시사점이 있기 때문에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1921년 책 《집단심리학과 에고의 분석(Group Psychology and the Analysis of the Ego)》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1995년에 나온 일본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도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러다 알게 되겠지. 어른이 된다는 건 가까워지든가 멀어지든가 하는 것을 반복해서, 서로 그다지 상처 입지 않고 사는 거리를 찾아낸다는 것을.” 사람 간의 적정 거리를 찾아낼 정도로 성숙하다면 드디어 어른이 된다는 의미다. 이 애니메이션의 26편 중에 4편에 고슴도치 딜레마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나라 뮤지션 딜라이트(delight)가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딜레마 이야기를 듣고서 영감을 받아 만든 노래 ‘고슴도치 딜레마’ 가사를 한 번 보자.

널 보면 두근두근 / 언제나 조금 조금 / 조금 더 다가가고파 / 내게는 삐죽 삐죽 / 가시는 아파 아파 / 너를 더 아프게만 해 / 내 짧은 팔 / 너를 안고 싶어도 항상 /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 네게는 상처만 남아
바보같아 정말 / 내게 했던 말은 모두 거짓말이야 정말 / 가까이 가까이 가까이 / 갈수록 너를 다치게 하는 나 / 바보 같아 정말 / 내게 했던 말은 모두 거짓말이야 정말 / 바라고 바라고 바라던 / 사랑은 바로 너뿐야 / ....
사랑한다고 상대방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몸의 가시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는 메시지의 노래다.

염세적인 철학자로 유명한 쇼펜하우어는 혼자 식당에 가도 꼭 2인분의 식사를 주문했다고 한다. 자신의 앞자리에 아무도 앉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쇼펜하우어의 이런 까칠한 성격이 고슴도치 딜레마라는 이야기를 만들어냈지만, 사실 고슴도치는 경계심을 풀면 등에 있는 털이 가시로 변하지 않고 가슴께에는 그런 털이 아예 없다. 즉 고슴도치끼리도 서로 가까워지려면 얼마든지 접근이 가능하다. 우리도 예의를 핑계로 지나치게 다른 사람들과 소원하게 지내지 말고, 추운 날씨에 서로 찰싹 달라붙는 펭귄만큼은 아니더라도 서로 사이좋게 지낼 필요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적절한 거리가 서로를 살린다 - 고슴도치 딜레마 (시장의 흐름이 보이는 경제 법칙 101, 2011. 2. 28., 위즈덤하우스)